[가우디 노트1. 장식] #4. “일반 형태와 관련되지 않은 아주 자유로운 형태를 가진 오브제가 필요하다”

orna
장식22-23페이지​​
 “기하학적으로 건조한 형태가 지나치게 반복된다면 적절한 대비를 위해 일반 형태와 관련되지 않은 아주 자유로운 형태를 가진 오브제가 필요하다.”

 

가우디의 글을 우리말로 소개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오늘 소개하려는 이 페이지에 드러난 가우디의 판단력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 어쩌면 나에게는 언제나 느꼈던 그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글이었다.오늘은 그 내용을 즐거운 마음으로 소개한다. 먼저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가우디가 처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곳은 피갈리아 바사에 지방에 있는 <아폴로 신전>이다. 이 신전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는 도저히 이 단락의 감을 잡을 수 없다.

 

언급된 피갈리아, 바사에 지역의 <아폴로 신전>은 서양 건축에서 코린티안 오더가 처음 발견된 신전이다.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말하는 것은 위대한 건축사가인 비트루비우스는 그의 저서인 건축 십서에 이 코린티안 주두의 창시자를 칼리마쿠스라고 지목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리마쿠스의 주두는 아직까지 발견된 바 없고, 현존하는 (물론 지금은 실물이 소실되어 확인 되지않지만) 가장 오래된 코린트식 주두는 역사학자 코커렐에 의하여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코커렐은 그 주두의 모습과 복원도를 그렸는데, 이후 그 주두는 온데간데 없어 그 모습은 코커렐의 그림으로만 전해져 내려온다. 내가 본문 20페이지에 실은 도판이 바로 코커렐이 당시에 그린 그 주두의 복원도다. 고로 우리는 최초로 발견된 코린트식 주두를 보는 셈이다. 이전까지 그리스 건축의 대부분은 도릭 오더와 이오닉 오더로 지어졌으나, 코린트식 주두가 만들어지고 난 뒤 로마 건축의 대부분은 (혹자는 거의 80%라고 했다) 코린티안 주두를 사용하여 지어졌다. 이에 대한 매우 자세한 내용은 내가 번역한 <건축; 형태를 말하다>라는 책에 언급되어있다. 여튼 너무 지루하니 각설하자면 가우디가 언급하는 이 주두는 서양 건축의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이 주두를 사용하여 지어졌으니, 적어도 이 주두는 그들에게 유효성을 인정받은, 아니 어쩌면 기존의 터스칸, 도릭, 이오니아 식의 양식을 뛰어넘는 무엇으로 여겨졌음에 분명하다.

 

이어지는 가우디의 묘사는 세밀하다. 일일이 그 코린트식 주두의 각 부재들을 언급하고 있다. 비전공자로서는 따라오기는 어쩌면 좀 힘든 내용이다. 실은 솔직히 말하자면, 요사이는 전공자들도 학교에서 이런 것을 배우지 않아 이해하지 못하기는 비전공자나 매 한가지다. 하지만 내용은 명확하다. 이 기둥은 예전에 없던 세로줄이 강력하게 드러났고, 그 세로줄을 동여 묶을 가로띠들도 강해졌다. (실제로 기둥의 세로줄을 묶고 있는 부분은 목두름띠 -혹은 목걸이- 라고 불린다) 다시 그것을 꾸미고자 여러 원형링들이 추가되어서, 전체적인 형상은 수직선, 수평선, 원형링, 띠, 정사각형 등의 여러 기하학적인 형태들로 충만해졌다.

이 부분이 하일라이트인데… 그런 기하학적인 형태들이 완전히 주두를 지배하게 되자, 어찌된 일인지 이 요소는 이후 건축 역사상 가장 자연의 형태에 근접한 팔메트와 아칸서스 잎으로 마무리 된다.

 

가우디는 뒤를 이어 리시크라테스의 기념비를 언급한다. 이 경우에는 맘에 들지않은 나쁜 사례를 언급한 것인데… 이 건축물은 기하학적인 것들만 가득하여 너무 건조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하다. 이부분에서느 언급되지 않으나 메모집의 뒷부분에서 가우디는 모든 종류의 지나침(과도한 것)은 이미 치우치면서 조화에서 벗어난 것이고, 조화에서 벗어난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가우디는 말한다.

 

“하지만 이처럼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들이 주도한 곳에는 모름지기 더욱 정밀한 자연 외에 무엇도 올 수 없는 법이다.”

 

대비contrast. 나는 묻고 싶다. 정말 우리 건축인들 조형 예술인들이 무언가를 만들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체계와 논리의 정합성을 지키는 것인가? 아니면 조화로움과 균형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인가? 우리는 건축과 도시를 이야기 하지만 조화와 균형 아름다움은 그 위에 있는 무엇이다. 매우 합리적인 건축이 전혀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가우디는 말한다. 그런 건조한 기하학이 지나치게 반복되는 경우라면, 일반 형태la forma general(일반 형태에 관해서는 이미 며칠 전 길게 설명한 바 있다)와는 다른 어떤 무엇이 필요하다고…

 

대비가 무엇인가? 어떤 요리사에게 우리가 단맛을 좋아한다고 설탕만 제공하고 정말 맛있는 것을 만들어 보라고 해보자. 단맛은 그 자체로 좋지만 그것이 더 그것 본연의 맛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다른 맛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쩔 때는 쓴맛이 어쩔때는 쓴 맛이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한다. 오미자차가 그렇고, 달고 쓴 커피도 그런 것일게다. 이런 것은 대비와 조화contrast, harmony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건축가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자유 자제로 구사할 능력을 갖추고, 또 그렇게 훈련되고 있는가? 차갑기 그지없는 화강암 붙임된 벽은 무엇을 통해 누구러지며, 조화를 이루어야 할까? 어떤 면에서 르꼬르비제의 판단 역시 가우디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의 집합주거는 95%의 자연 속에 놓여졌다. 코르비제의 전집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의 빛나는 덩어리들의 및에 놓인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속의 정원을 훨씬 넘어서는 야생성을 갖고 있다. 몇몇 그의 스케치 속에 등장하는 르꼬르비제의 자연은 거의 늪지대와 같은 웅덩이와 (화분에 심긴 것이 아닌) 정말 거대한 나무, 축축한 흙과 텃밭, 복싱하는 땀내나는 건장한 남성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더니즘의 감수성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듯 보인다. 우리는 르 꼬르비제의 것중 일부만 가져왔는데… 그 대비가 가졌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아주 합리적인 무엇, 그리고 딱딱하고 차가운 것들만 들여왔다. 사보이는 푸른 초원위에 있었는데 오늘날 사보이는 아스팔트 위에 있다. 우리시대는 그 시대와 다르니까, 조화 뭐 그런거 모른다고? 장식은 거부한다고? 채색은 거부한다고? 한 라디오 프로에서 어떤 건축가가 ‘우리 건축가들은 색을 싫어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그럴 수는 없다.

 

여튼 코린티안 주두는 등장했고, 나름 건축 양식을 평정했다. 무엇이 그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는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맞기겠다. 물론 도릭과 이오니아식에도 건조함을 매꾸는 나름의 보완체계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까지 언급하려면 정말 에이포 8바닥이 될 것 같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너무 많으나 이만 여기까지…

 

2014년 9월 16일

이병기
Byungki Lee

Byungki Lee

architect, editor at architwins
가우디의 모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번역했고,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가우디전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Byungki Lee

2 thoughts on “[가우디 노트1. 장식] #4. “일반 형태와 관련되지 않은 아주 자유로운 형태를 가진 오브제가 필요하다”

  1. 첫 해설부터 여기까지 파죽지세로 읽었습니다. 혼자 읽을 때는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않고 어려웠었는데, 해설을 읽으니 너무 재미있네요 ^^ 내일 또 이어서 봐야겠습니다..

  2. 블로그 열고 첫번째 달린 댓글입니다.^^ 반갑기 그지없네요. 원래 이런 정도의 해설을 본 책에 부록으로 넣을까 하다가, 원전 자체의 분위기를 헤치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 별다른 해설없이 가우디의 노트를 출간했답니다.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쉽지않은 가우디의 노트를 읽어주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주변에도 좋은 소문 부탁드립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