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노트1. 장식] #5. “웅장한 덩어리는 언제나 그 자체로 하나의 숭고한 장식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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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페이지​​
 “(에렉테이온) 그 신전은 보다 정성이 깃든 성숙한 형태를 드러냄으로써
웅장하지 못한 규모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단순한 형태가 웅장한 것에 걸맞는 특성이며, 풍성한 장식이 작은 덩어리에
고유한 특성이라는 사실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가우디는 오늘 에렉테이온에 관해 이야기한다. 잘 알려진 이 신전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는 이오니아식 신전으로서, 도리아식인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영역 내에 지어졌다. 도리아식은 이오니아식에 비해서 훨씬 굳건하게 보이는 단단한 성격을 가진 양식이다. 이오니아식은 도리아식에 비하면 약간 야리야리한 양식이다. 빛과 그림자, 사용하는 명암의 계조에 있어서도 적지않은 차이가 있다. 도리아식이 평편한 면에 강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반면, 오늘 가우디가 언급하듯이 이오니아식 신전은 여러 자잘하고 세련된 몰딩들을 통해 여러단계의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다. 한층 부드러워진 계조로는 한마디로 보다 우아한 무엇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나는 25페이지 중반에 언급되는 ‘규모의 본성’에 관한 부분에 더 주목하려한다. 앞서 언급했듯, 에렉테이온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언덕에, 지척의 거리에 있다. 파르테논을 본 사람은 이 신전도 보았을 터, 비교가 되지않을 수 없다. 파르테논의 굳건한 도리아식 기둥은 지름이 1.9미터에 이른다. 그에 비하면 에렉테이온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만약 에렉테이온 신전의 규모에 파르테논과 같은 도리아식을 적용한다면, 파르테논과 같은 숭고한 아름다움에 이를 수 있었을까? 물론 그럴수 없다. 도리아식의 미덕은 명확함, 숭고함, 굳건함 같은 것에 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규모가 필요하다. 순수 입방체들을 이룬 불레의 계획안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 역시 그것의 규모와 관련되어있다. 파르테논의 기둥은 지름이 1.9미터나 된다.



“웅장한 덩어리는 언제나 그 자체로 하나의 숭고한 장식 요소였다.”
에렉테이온의 규모는 그에 비하면 초라하다. 쉽게 생각해보자. 덩치가 큰 어른이 (나처럼…)​ 깨알같은 애교를 부리고, 재잘거린다면 우리는 그를 좀 경박하다고 볼 것이다. 코끼리와 공룡이 어떻게 그려지며,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생각해보자. 장식도 그렇다. 자잘한 장식, 깨알같은 모티브들은 재료의 본성을 드러내는 숭고함을 드러내기 보다는 재잘거리는 애교에 가깝다. 그러면 7살짜리 조그만 아이는 어떤가? 꼬맹이가 다 큰 어른처럼 과묵하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그것 역시 이상하게 여긴다. 아이의 미덕은 근엄함보다는 귀여움에 가깝다. 또 다 큰 어른이 아무리 귀여운 척을 해봐야, 쬐간한 아이를 따라갈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리 해도 마찬가지일게다. 이건 이해하기가 전혀 어렵지 않다.  가우디가 이야기 하듯 이런 것은 일반의 상식이다. 하지만 오늘날 건축가는 이런 상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실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규모에 따라 그 건축물을 적절한 방식으로 장식하기 보다는, 자신의 손에 익숙한 재료와 그 언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타성에 젖어 있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우디가 말하듯 ‘근원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가우디는 에렉테이온 신전은 자신의 규모, 그 본성에 따라 더욱 세련되고 우아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기록한다. 그 규모의 본성에 맞는 형태를 갖추는 것. 그것이 조화로운 것을 이루는 기본이다.
오늘의 분량은 그다지 어려운 내용은 없으니 이쯤 줄인다. 아마 다른 내용들은 읽는대로 바로 이해가 될것이다.


2014년 9월 17일
이병기
Byungki Lee

Byungki Lee

architect, editor at architwins
가우디의 모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번역했고,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가우디전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Byungki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