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의 어록] 조화

[가우디의 어록] 조화

조화harmonia 즉, 균형equilibri을 이루기 위해서는 빛과 그림자, 연속성, 움푹한 것과 불거진 것 등의 대비가 필요하다.

 

Per a l’harmonia, això és, l’equilibri, és necessari el contrast llum i ombra, continuítat, concavitat, convexitat, etc.

 

<가우디와의 대화> 180p, 조안 베르고스의 기록.

 

 

성가정 성당 (사진: 이병기)

 

오늘의 어록도 내가 무척 좋아하는 가우디 말이다. 이 만큼 가우디의 조형적 판단기준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가우디는 조화harmonia를 균형equilibri에서 찾고 있다. 다른 기록에서 그는 ‘하모니라는 것 자체가 균형을 이야기하는데, 한 쪽으로 치우친 것[곧, 과도한 것]이 어떻게 조화로울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한 실마리는 그의 젊은 날 노트에서 찾을 수 있다. 건축노트에 가우디는 리시크라테스의 기념비를 언급하며, ‘이처럼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들이 주도한 곳에는 모름지기 더욱 정밀한 자연 외에 무엇도 올 수 없는 법이다‘라고 기술했다. 풀어 말하자면 정육면체 위에 정육면체를 올리고 원통에, 원뿔 고깔에, 수직 수평의 추상적인 기하학으로 가득한 곳에 화룡정점 마무리를 지으려면 기하학을 벗어나 정말 구상적인 무엇[이 경우는 ‘더욱 정밀한 자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우디는 이 노트에서 코린티안 주두의 형태 역시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기하학과 기하학, 그 위에 기하학을 올린다면 아무런 대비를 이루지 못한다. 단순히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추상과 구상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세계 중 한쪽에 치우치게 된다. 만약 구상적인 형태에, 구상적인 형태를 더하고, 그 위에 구상적인 형태를 올린다면 가우디는 어떤 판단을 했을까? 노트에 이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오늘 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그것 역시 한쪽에 치우친 것이 된다.

 

예전에 어머니가 태국인가 다녀오시면서 ‘태국의 가우디’라고 알려진 사람의 건축물이 소개된 브로셔를 가져오셨다.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난삽한 형태의 잔치. 피식 웃음이 났다. 조화와 균형에 대한 감각이 없고, 빛과 그림자에 대한 섬세한 판단도 없었다. 이건 하수의 건축작품이다. 관광객의 눈에는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나, 가우디의 건축과 전혀 다른, 오히려 가우디와는 정반대되는 건축이었다.

 

 

 

 

밀라 주택의 베스티불 (사진: 이병기)

 

가우디는 조화로움을 균형을 이루는 것에서 찾고 있다.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어떤 형태가 있다면 그것에 볼록하고 옴폭한 형태들을 더하여 그것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또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물론 인류는 이렇게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왔다. 이 판단은 가우디의 주관 즉, 그의 예술적 판단기준이다. 하지만 나는 가우디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가우디가 교육받은 구세대 건축에 대한 반작용이다. 라파엘 모네오는 ‘가우디는 무척 예외적인 특별한 인물이지만, 그 역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해된다’고 평했다. 할 이야기는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2017년 9월 19일 (수정)

이병기

 


*밑줄친 부분은 ‘<가우디노트1. 장식>, 안토니 가우디 지음 이병기 옮김, 아키트윈스, 2014, 23p’에 소개된 내용이다.  

Byungki Lee

Byungki Lee

architect, editor at architwins
가우디의 모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번역했고,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가우디전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Byungki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