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의 어록] 고딕 양식은 원형을 남용한다.

[가우디의 어록] 고딕 양식은 원형을 남용한다.

고딕 양식은 원형을 남용한다. 남용이란 언제나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것은 조화롭다 할 수 없다.

El gòtic és l’abús del cercle, i un abús sempre és fora de llei; per tant, no pot ésser una harmonia.

 

<가우디의 노트 중, 아직 출간되지 않은 부분>

 

 

 

Own work, 2012-05-13, CC BY-SA 3.0, Link

 

얼마전 우리나라에 출간된 가우디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은 가우디 노트의 글을 앞을 끊고, 뒤를 잘라 그가 어떤 양식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것처럼 기술해 놓았다. 요컨대 가우디는 고딕 양식을 좋아했고, 어떤 양식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옮긴이가 가우디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가 어떤 부분을 오독했는지도 알만 했다. 그는 아마도 가우디 언급의 마지막 부분만 짧게 발췌한 글을 읽었을 것이다. 이처럼 그의 생각을 짧게짧게 끊어서 읽자면, 가우디가 고딕 건축을 예찬한 것과 비판한 것을 모두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짧게 끊어 사실을 단정하게 되면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이 글도 토막쳐 읽으면 고딕 건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가우디는 고딕 건축을 무척 좋아했다. 다만 그 건축이 더 나아지길 기대한 것 뿐이다. 가우디는 성가정 성당의 양식을 ‘지중해 고딕’, ‘옷 입은 고딕’이라고 불렀다. 큰 맥락에서 보면, 이런 가우디의 말들은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 나는 얼핏 맞서는 것 같이 보이는 이런 말들도 모두 가우디가 언급한 내용이라고 믿고 있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나름 가우디의 건축을 해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화와 대비라는 관점에서 보면 고딕이 원형을 지나치게 남용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장미창의 형태는 ‘자’와 ‘콤파스’만으로 그린 것이다. 기하학이 친 울타리를 넘지 않는다. 그 체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이 창들을 지극히 세밀하고, 화려하게 치장했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 다른 관점에서 창을 바라보자. 고딕 성당이 아무리 밝다해도, 저 높이 달린 창의 이런 세밀한 장식들이 과연 우리 눈에 잘 보이기는 할까? 가우디의 성가정 성당 측면의 창과 장미창은 내부에서 본 모습과 외부에서 본 모습 서로 다르다. 내가 번역한 <가우디 1928> 책에도 측면 창의 내외부 모형을 같이 보여주며 내부와 외부의 상황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설명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내부는 어둡다. 내부에서 관찰자는 이 창은 멀어야 20미터 정도 거리에 있게 된다. 이 창을 통해 내부로 들어온 빛은 제법 각도가 있다. 외부는 강한 빛이 비춘다. 외부에서 자잘한 장식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룩으로 비춰질 뿐이다. 외부에서 관찰자는 내부보다 훨씬 멀리에 있다. ‘피겨 앤 그라운드’ 그림으로 보자면 내부에서 주인공은 들어온 빛의 모습 그 자체라면 외부에서는 그 틀이 주인공이다. 

 

고딕성당과 성가정 성당 창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딕 성당의 창은 하나의 체계 안에 꽉 짜여져 있다. 이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되고 선한 것이다. 가우디의 창은 고딕 창의 형태에 바탕하고 있지만 스스로 이 체계를 벗어난다. 안과 밖에서 실제로 그것을 바라볼 관찰자와 그것의 효과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나쁜 것이 아니다. 이 선택은 작가의 예술적 판단에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7년 9월 28일

이병기

 

 By Daniel Vorndran / DXR, CC BY-SA 3.0, Link
Byungki Lee

Byungki Lee

architect, editor at architwins
가우디의 모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번역했고,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가우디전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Byungki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