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강의] 19세기 바르셀로나 그리고 모데르니스마 카탈라나

[가우디 강의] 19세기 바르셀로나 그리고 모데르니스마 카탈라나

 

당시는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던 격변의 시대였다. 일찌감치 기계공업을 들여와 산업도시로 변모한 카탈루냐는 스페인 산업을 선도했고, 이로 인해 지역 사회에는 진보와 번영에 대한 기대가 충만했다. 이런 자신감은 곧 지역 문화부흥으로 이어졌다. 문예, 음악, 조형예술, 건축 분야에서 ‘레나이센샤 운동 ’이 일어나면서 민족적 각성을 이끌었다. 그들은 유람협회를 조직하여 지역의 자연과 문화재를 돌아보고, 이곳저곳 숨겨진 카탈루냐 민족의 고유한 문물을 찾아내어 이를 예술로 기념했다. 건축에서도 지역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과 꽃을 장식의 소재로 사용하는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지역주의 색채를 드러냈다.

산업사회에 발맞추어 신흥 부르주아들이 등장했다. 귀족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예술을 찾았고, 이를 후원했다. 이들은 사회경제적 변화와 이윤에 눈이 밝은 사람이었다. 귀족들은 보통 구도심에 자신의 가족만을 위한 독립 건물에 살았지만, 실리적인 판단이 몸에 밴 부르주아들은 아래층에 상점, 위층에 임대주택을 배치한 새로운 주거유형을 더 선호했다. 이런 요구에 따라 가게와 주인 집, 세입자들의 출입이 분리된 새로운 도시주거 유형이 등장했다. 가우디의 대표작인 칼벳 주택, 바트요 주택, 밀라 주택이 바로 자기 공장을 갖고 있던 산업자본가의 집이었다.

1888년과 1929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두 번의 만국박람회는 이런 문화적 흐름을 하나의 운동으로 이끄는 촉매이자, 약동하는 카탈루냐 지역의 산업과 문화를 세계 만방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박람회를 전후하여 도시가 대폭 정비되었고, 박람회장 자체가 명망 있는 건축가들의 경연장이 되면서 새로운 건축이 사회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박람회장 건물과 산파우 병원, 카탈루냐 음악당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아방가르드 건축은 식물 문양과 채색된 도기 등 화려한 장식을 통해 육중한 돌 건물에 살아있는 것들이 갖는 활기와 역동성을 담아냈다.

1878년 건축학교를 졸업한 안토니 가우디는 유이스 도메넥 이 문타네르, 주셉 푸치 이 카다팔크와 더불어 모데르니스마 건축을 대표하는 세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뜻밖에도 가우디는 그 중 장식을 가장 절제하는 편이었다. 가우디 역시 장식을 이용했지만, 그와 동시에 ‘의미 없는 장식’을 줄이려는 노력 을 그치지 않았다. 이후 가우디는 자연주의 장식을 벗어나, 새로운 기하학을 통해 건축물에 활기를 덧입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가우디 연구자 조지 콜린스는 변화무쌍한 가우디 건축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는데, 그 중 장식에 관한 연구가 가장 두드러진 때는 그의 나이 40세를 전후한 두 번째 시기였다.

Byungki Lee

Byungki Lee

architect, editor at architwins
가우디의 모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번역했고,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가우디전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Byungki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