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노트1. 장식] #31. 아무 의미도 없고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가우디 노트1. 장식] #31. 아무 의미도 없고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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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설령 누군가 그곳의 콤포지트 주두에서 올리브 가지를 발견한다 한들, 이를 아칸서스 가지와 혼동하지 않겠는가?

 

 

 

모두 알다시피 가우디는 장식적인 건축가다. 누가 그것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의 건축 노트가 <<장식la ornamentación>>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그의  깊은 고민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파리 오페라를 보며 그의 건축노트에 이런 감상을 기록했다.

 

[저런 값나가는 장식에 돈을 허비하는] 아무 의미도 없고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위해 그밖의 것들을 팽개치기보다 물질적 필요와 정신적 열망을 만족시키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당연하지 않은가?

 

처음 이 노트를 읽었을 때 나를 적잖히 당황했다. 요새 말로 그 느낌을 말하자면 “지는~!” 쯤 되겠다. 파리 오페라도 화려하지만, 성가정 성당의 조각 장식에는 댈게 아니다. 성가정 성당은 지극히 조각적이다. 아니, 이정도면 이를 ‘조각적인 건축’이라 해야 할지  ‘건축적인 조각’이라 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우리 눈을 혼란케하는 이 현란한 조각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여러 이야기꺼리가 있다. 기둥 머리의 종려나무와 두 기둥 위에서 나팔을 부는 4 천사는 메시야의 오심을 기념하고, 약동하는 여러 동식물 역시 메시아를 통해 장차 회복될 새로운 세상을 고대하며 떨고 있다. 사실 성경적으로 보자면 인류뿐 아니라 동식물 역시 메시야의 오심을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무척 억울하다. 태초에 하나님이 만든 세계는 죽음도 슬픔도 없었다. 누구도 서로를 죽이지 않던 완벽한 균형상태. 인간의 범죄를 통해 온 세계의 질서가 다 뒤틀어진 것이다. 여튼 이 장식들은 순전히 눈에 보기 좋자고 한 것은 아니다. 종교 건축물의 진정한 존재의 이유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스페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 역시 성가정 성당의 장식은 종교건축물로서 적용된 특별한 사례라고 언급했다.

 

그가 남긴 수기 노트에는 아무런 도판이 없으니 그가 정확히 가르니에 오페라의 어느 부분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내용은 쉽게 수긍이 간다. 3층, 4층 높이에 있는 콤포지트 주두[콤포지트는 말그대로 여럿을 섞어만든 합성 주두이다. 아참! 주두는 기둥 머리를 가리킨다]에 열심히 올리브 나무를 조각한 들, 아칸서스 가지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느냐? 또 설령 구분이 된다한들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냐는 질문이다. 오히려 그곳에 쓰일 돈을 다른 곳에 쓰는 편이 낫다고 이야기한다. 근대인으로서의 합리적인 판단이다.

 

애기 데리러 학교 가야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이만.

2017년 8월 31일

이병기

 

Byungki Lee

Byungki Lee

architect, editor at architwins
가우디의 모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번역했고,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가우디전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Byungki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