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노트1. 장식] #32. “건축물이 장식과 다른 길을 걷고, 그것들이 서로 맞서기”

[가우디 노트1. 장식] #32. “건축물이 장식과 다른 길을 걷고, 그것들이 서로 맞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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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것의 불가능성, 즉 건축물이 장식과 다른 길을 걷고, 그것들이 서로 맞서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과도한 것을 이루고자하는 우리의 욕망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건축을 구현하는 것이 명백한 양심의 문제로 떠오르면서- 건축가 가르니에에게 마련된 나폴레옹 3세의 모든 보물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By isogoodOwn work (image is NOT on Flickr), CC BY-SA 4.0, Link

오늘의 노트는 지난 시간에 이어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 건물의 장식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가르니에 오페라는 파리 개조사업의 핵심적인 프로젝트였기에, 나폴레옹의 막대한 재정후원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그 건물의 규모나, 도시를 향한 배치나, 정면에 사용된 귀한 건축재료, 그것을 만든 이들의 솜씨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모든 보물도 큰 의미는 없었다. ‘건축물construcciones’과 ‘장식decoracion’이 다른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건축물이라고 번역한 이 단어, ‘construcciones’를 살펴보자. 이 단어는 4 단위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con-stru-ccion-es” 제일 앞의 ‘con’은 ‘함께’라는 의미를 담은 접두어, 그 뒤를 이은 ‘stru’는 ‘struir’ 즉 ‘구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ccion’은 동사 끝에 붙여 뭐 뭐 화된 상태를 말하고, ‘-es’는 복수 그러니 하나 둘 하고 셀수 있는 무엇임을 나타낸다. 라틴어 ‘컨스트룩시오네스’ 는 그리스어 ‘아르키텍투라’라는 말의 번역어라 할 수 있다. 풀어 말하면 ‘하나의 구조를 갖고 이루어진 상태의 무엇’을 가리킨다. 이것과 장식이 분리되었다는 말씀이다. 앞서 가우디는 ‘건축적 통일성’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었다. 장식이 건축물과 맞선다 함은 그 구조의 총체를 이루는데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가우디는 이를 ‘과도한 욕심’이며, 이는 양심의 문제라고 판단한다.

 

장식은 그냥 예쁘게 하는 것인가?

 


By Hans Peter Schaefer – Own work, CC BY-SA 3.0, Link

어떤 이들은 건축을 하나의 우주를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기술적으로는 ‘바닥, 벽, 천장 등’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수단을 통하여 하나의 공간, 장소를 만들고 장식 역시 이 일에 동참한다. 건물 내부와 외부의 필요가 다르고, 중력은 우리를 피할 수 없는 변수이다. [예를 들어 미스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생각해보라 중력권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나의 면plane을 공중에 떠오르게 할 수는 없다. 이때가 바로 ‘모따기된 십자형, 크롬도금된 반짝 기둥’이 등장할 타이밍이다] 여러 차이들에서 생겨나는 ‘계획’과 ‘실행’의 불일치, 그 간격을 줄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장식이다. 물론 건축을 ‘컨스트룩시오네스’로 보는 시대가 이미 지났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짓는 것이 ‘건축’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것을 ‘장치’ 등 다른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여튼 가우디는 백년전 사람이니까.

 

2017년 9월 6일

이병기

Byungki Lee

Byungki Lee

architect, editor at architwins
가우디의 모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번역했고,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가우디전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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